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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12/21 18:24:30
Name   Jannaphile
Subject   군대 제초 별동반에서의 안전사고 에피소드
군 입대 중 제초 별동반에 파견되었다가 안전사고가 발생했고, 그 후 어떻게 책임소재를 몰고 갔는지에 대한 얘기입니다.
10년도 더 된 얘기라 요즘과 상황이 다를 수 있습니다.

전 20대 중후반에 공군 비행단(육군으로 치면 사단급)으로 입대했습니다. 나이가 많긴 많았는지 근무 대대에서 막 대위를 단 중대장이 동갑이더군요.

공군 비행단에서 연중 첫 손에 꼽히는 행사는 여름 내내 행해지는 제초작업입니다. 비행단은 부지가 무척 넓어 대대별로 제초 구역을 할당합니다. 저희 대대 인원은 간부 반 병 반으로 100명 수준이었는데요. 대대에서는 중대별로 매일 2~3명 차출하여 간부 포함 10여명이 제초를 하고 다녔습니다. 100명 중 스케줄 근무 오프자, 휴가외출자를 빼고 매일 10명이니 결코 적은 비율이 아니었지만 할당 구역은 넓고 잔디는 빨리 자라서 인원은 늘 부족했습니다.

이래도 비행단 전체로 보면 미할당 구역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대대별로 1개월에 1명씩 차출 후 제초만 전담하는 비행단 관리 별동반에 파견됩니다. 반장은 대개 10년 전후의 짬 되는 중사급이 파견나와 맡게 되고, 대략 20명으로 부대를 구석구석 제초하고 다닙니다. 저도 여기에 파견이 되었는데 파견이 끝날 즈음에는 제초귀신이 되더군요.

말이 단 관리지, 이런 별동반은 일종의 외인부대라 지원이 좋지 못합니다. 제초 때는 위험한 일이 종종 발생하므로 안전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정작 장구가 제대로 갖춰지지 못했습니다. 예초기 연료는 물론 소모품인 날, 예초기 끈도 제대로 보급받지 못했을 정도니 안전장구 쯤이야... 매일 반경 수 백 m씩 제초를 하여 예초기 혹사량이 엄청난 터라 고장도 자주 났는데 이것도 대개 자체적으로 해결했습니다.

상황은 열악했지만 제초반장님의 통제력이 좋아서 꽤 즐겁게 일했습니다. 수송대대 소속 중사로서 저보다 두 살이 많았는데요. 반장님은 나이차이가 얼마 안 나는 저를 많이 챙겨주셨고 저도 형처럼 여기며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렇지 않고도 붙임성이 좋은 분이라 타대대 간부들과도 친하게 지내시더군요.

파견 마감이 며칠 남지 않은 때였습니다. 단 본부 인근의 공용구역을 제초하게 되었는데요. 여느 때처럼 제대로 돌아가지 않은 예초기가 많았고 보호장구도 부족하여 반장님은 인근 대대에서 기기 몇 대와 고글 몇 개를 빌려왔습니다. 단의 지원이 아닌 개인 친분으로요. 고글도 얇디 얇고 쉽게 휘어지는 것이었지만 직접 눈으로 오는 건 막을 수 있었죠. 그렇더라도 개수가 부족했기 때문에 안경 착용자는 그대로 작업하고, 맨눈인 사람들에게만 고글을 착용하게 했습니다.

"앗!"

한창 작업 중 외마디 비명이 들려왔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소리난 쪽을 향했습니다. 한 일병 동생이 두 손으로 눈을 감싸고 쓰러지고 있었습니다. 바닥에 뒹굴던 마른 나무가지 조각이 날에 썰려 날아가 [안경을 뚫고 안구에 정통으로 꽂힌] 것이었죠. 그 일병은 바로 의무대로 보내졌고, 작업은 중지됐습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감찰실에서 진상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이유는 명백해 보였습니다. [안전장구 미착용으로 인한 안전사고]. 조사가 되면 될수록 장구조차 제대로 못 구비한 지휘부는 아무런 잘못이 없고, 제초반장에게 모든 책임이 쏠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징계가 [3개월 감봉]으로 잠정 결론나는 분위기였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공무원 사회에서 감봉은 제법 중징계입니다. 인사적체가 심한 공군에서 감봉이면 진급이 기약 없게 됩니다.

이 모습에 너무 빡이 올랐던 저는 비행단 인트라넷에 소속 대대와 이름까지 다 밝히며 장문의 글을 올립니다. 작업 전후 상황, 제초반의 열악한 상황, 그런 상황 속에서도 제초반장이 어떤 식으로 관리감독 해왔고, 어떤 교육을 시켰으며, 장구를 어떻게 분배했는지를 적었고, 비록 장구를 착용하지 않았지만 안경 착용자의 안경을 뚫고 나뭇가지가 꽂혔을 정도면 말랑말랑한 고글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을 거라는 점(=안전장구가 엉터리)도 어필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책임을 제초반장에게 지우는 모습에 당혹스러우며 진상조사를 다시 제대로 해주시기를 바란다는 내용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신기하게 댓글은 안 달렸는데 조회수가 1천 건(단 전체 인원의 50% 이상)을 넘을 만큼 관심을 끌었죠.

일단 대대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글을 올린지 두어 시간이나 지났을까, "얼른 튀어와라." 주임원사님께 전화가 걸려옵니다. 저는 이내 대대 주임원사와 면담, 중대장과 면담, 이후 단 주임원사와 면담, 감찰실 소환 후 면담 등등을 행했고, 단장님께서 그 글을 보셨는지 재조사도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제초반장의 징계는 [경고]로 확정되었습니다. 당초에 비해 많이 경감된 것이었죠. 안전장구는 물안경 같은 두꺼운 것으로 넉넉하게 바뀌었습니다. 예초기도 신형 기기 몇 대를 구입하였습니다. 불행 중 다행인지, 사고를 당한 병은 실명까진 가지 않았으나 시력이 매우 나빠졌습니다. 이 정도론 의병제대까지 안 가는 모양이더군요. 여하튼 사건은 이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훗날 제초반장님과 차를 한 잔 했는데 저한테 "고맙다. 네 덕분이다."라고 하시더군요. 대대 주임원사님도 모두가 있는 자리에선 저한테 화를 냈는데, 나중에 저를 따로 불러내서 "잘했다. 앞에선 일부러 그런 거니 이해해주라" 하시네요. 다른 자리에서 만난 부사관들도 저한테 "잘했다" 한 마디씩.

돌이켜 보면 당시 어떻게 저리도 호기로운 글을 올렸는지 모르겠습니다. 겁이 없기도 했고, 전역하면 끝인 병이라 그랬겠죠. 아무튼 개인적으론 지금까지 참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건을 통해 크게 세 가지를 느꼈습니다.

1. 그 어떤 장교도 책임지려 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런 사람들을 믿을 수 있나?
2. 장교와 부사관 사이에 보이지 않는 골이 상당하고, 부사관들은 피해의식이 제법 있다.
3. 여기나 어디나 다 일이 터지고 나서야 호들갑을 떤다.

장문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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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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