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쥬브 프로토콜
## 마음, 지갑
쓰러지고 지친 영혼을 위한 성역을 만들기 전, 줄리안은 어느 곳에서건 항상 맨 가장자리에 있던 소년이었다.
그는 태생적으로 집단에 잘 섞이지 못했다. 고교 시절, 그의 동급생들이 스포츠와, 친구들 사이에서의 인기와, 각종 계층과 계급에 관심을 빼앗겼던 그 시기에, 그는 모순되고 조화되지 않는 것들에 끌렸다. 그는 평범하지 않은 모든 것들을 사랑했다. 남들이 하지 않는 것들, 가지 않는 길, 일반적인 논리를 뒤엎거나 부정하는 기막힌 아이디어들, 그리고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움직이는 기발한 소프트웨어 코드 속에 담긴 복잡계의 미학이 그의 눈을 사로잡았다. 교실에서, 그는 괴짜였고, 가까이하기에 힘든, 이상한 녀석이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는 말하기 전 항상 공부했고, 자신의 식견을 실었으며, 다른 급우들이 혼란스러워하는 모든 현상에서 질서를 찾았다.
새롭고 기이한 것이라면 무조건 추종하고 보는 그의 특이한 성격은 예상치 못한 장점이 되었다. 그의 학교 공부 성적은 그냥저냥이었지만, 실무에서는 허를 찌르는 기법들로 무장한, 예측 불가능한 무언가가 되었다. 그는 이미 10대 중반에 다크 웹을 돌아다닐 수 있는 안전한 방법을 습득했고, 이를 기반으로 보안 컨설팅의 2차 외주를 받거나-대부분 작은 회사들이 의뢰를 받은 뒤 그에게 재하청을 보내는 식이었다-, 또는 그럭저럭 쓸만한 데스크탑용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꽤나 쏠쏠하게 돈을 벌었다. 그의 급우들이 새 신발이나 게임 현질을 위해 부모님께 용돈을 더 달라고 졸라대는 동안, 줄리안은 자기 통장에 어느 정도 인정된 실력을 보유한 경력직 정도의 돈을 직접 벌었다. 오직 실력자만 인정받는 정보보안의 세계에서, 그는 소소하지만 꽤 괜찮은 평판을 지닌, 주변 사람들이 기대하는 뉴비였다. 하지만 학교에서 그는, 아무도 그 존재를 모르는 유령이었다.
어느 날, 누군가가 그를 발견하기 전까진.
아무런 예고도, 단서도 없었다. 그녀가 접근했다. 그녀는 줄리안같은 특이한 캐릭터에 흥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항상 밝고 활기찼으며, 주변은 친구들로 가득했다. 그녀는 타고난 우아함으로 주변에 사람들을 끌어들였고, 줄리안 또한 그 모습에 끌렸다. 그는 자신이 아무 이유 없이 끌려가는 모습에 스스로 당황했지만, 곧 자신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또래들 사이에서 계속 곁다리만 돌았지만, 그녀를 통해서라면 보통의 삶에 좀 더 가까워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보통'이라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는 다크 웹을 동네 마실 나가듯 돌아다녔지만, 현실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어 본 적도 별로 없었고,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모든 것들이 그에게는 가장 어색한 부분이었다. 결국 그는 평범함을 '연기'하기로 했다. 그는 그가 갖고 있는 모든 기술을 이용해서 영화와 책에 있는 사회활동에서의 상호작용, 특히 십대 남녀간의 관계를 고찰하고, 그 모든 것들을 흉내냈다. 둘이 만나 데이트를 했고, 십대 남녀가 사귀는 가장 정석적인 시나리오를 따라갔다. 하지만 그의 밑천이 바닥나는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녀가 갑자기 무언가를 먹으러 가자고 하면 그는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라 허둥댔고, 그녀는 잠시동안 그의 허둥대는 꼴을 재미있다는 듯 관찰하고는 자기가 선택한 디저트 가게로 그를 데리고 갔다. 그녀가 선택한 가게의 디저트는 항상 심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달았고, 화학약품의 맛이 넘쳐흘렀지만, 어쨌든 그녀는 그 가게를 좋아했다. 영화관에 가면 보고 싶은 영화의 선택은 항상 그녀의 몫이었다. 줄리안은 예전부터 이야기의 진행보다 어떻게 해야 영사기에서 영상을 출력하는 메커니즘을 더 궁금해했지만, 지금은 그녀를 위해 어떻게 해야 로맨틱한 장면에서 좀 더 '정상적으로' 반응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녀는 가고 싶은 곳의 웹 링크를 보냈고, 하고 싶은 것을 말했으며, 가끔은 상점에서 무언가를 사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는 남자친구의 역할을 최대한 충실히 수행하려 했다. 남자니까. 자기 여자에게 잘 해주는 것은 남자가 당연히 가져야 할 미덕이었다. 물론, 고등학생의 요구사항이란 게 잘해봐야 다 거기서 거기였던 터라, 그에게 크게 무리가 가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남자친구의 모습 안에서 역할에 최대한 충실했다. 다크 웹을 뒤지고 추적하는 업무에서 그가 했던 때처럼, 다양한 정보 원천을 이용하여 가장 최적화된 결과를 제공했다. 그와 함께 일하던 나이 많은 동료 해커들은 가끔 그에게 '한창때다' 내지는 '좋겠네' 하면서 그를 응원했고, 자기가 갖고 있던 할인 쿠폰을 주거나 괜찮은 데이트 코스를 추천해 주기도 했다. 오프라인에서 미팅이 잡힌 날에는 얼굴이 밝아졌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고, 눈치 빠른 상대방이 '줄리안 군, 연애하는구나?'라고 한마디를 던지면 뒷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드디어 그에게 봄날이 왔다. 플래그 비트 업(flag bit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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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 줄리안은 지역의 가장 큰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프리미엄 커플석을 예매했다. 꼭 개봉일에 맞춰 보고 싶다고 2주일 전부터 졸라대던 그 영화였다. 영화관의 관람객은 대부분 여자들이었다. 내용은 속칭 말하는 '최루성'. 감성을 자극하고 관객을 펑펑 울리는, 그런 류였다. 이제는 그 또한 영화 감상에 익숙해져서, 영사기의 메커니즘보다는 내용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그의 머릿속은 장면과 장면을 어떻게 배치하고 어떤 사건을 넣으면 어떤 감정을 어떻게 유도하는지를 분석했다. 그녀는 그의 접근을 그렇게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언젠가는 늙은 영화 평론가의 꼰대 기질 넘치는 잔소리 같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래도 그는 영화관을 나올 때 그녀가 기분 좋게 웃는 그 모습이 좋았다.
머릿속에서 시나리오와 연출을 한참 분석하는 가운데, 의자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 팝콘이라도 사러 간 걸까. 옆자리의 온기가 빠르게 식었다. 그는 비어 있는 좌석을 보며 그녀가 오길 기다렸다. 화장실이 길어지는 걸까. 속이 안 좋은가. 아까 먹었던 점심이 잘못된 걸까. 머릿속에 여러 가지 가설이 뒤섞였다. 머리는 혼란스러웠고, 가슴은 공허했다. 거대한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영상을 보며 여기저기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에게는 프로그램에서 아무런 결과도 반환하지 않는, void로 선언된 함수에서 무언가를 반환하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영화가 끝나고, 상영실의 불이 켜졌다. 그녀는 오지 않았다. 그는 한참동안을 기다리다가, 화면에 올라가는 제작진 크레딧이 절반쯤 올라갔을 때쯤 출구로 나섰다. 그리고 그는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무언가를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디 있었어? 안 보여서 찾았는데."
그의 질문에,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한 마디를 뱉었다.
"아, 맨 뒷자리에서 혼자 영화 봤어. 그게 더 편하더라."
별거 아닌 한마디. 그와 동시에 타임스탬프와 로그를 밀리초 단위로 분석하는 그의 두뇌가 빠르게 회전했다. 그가 현상을 파악하는 데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젠장. _플래그 오프셋을 잘못 읽었다._
'아주 전형적인 휴먼 에러(human error)네.'
그동안의 모든 것들이 빠르게 이해되었다. 왜 그녀는 줄리안이 같이 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고 말할 때마다 항상 선약이 있었는지, 왜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과 하고 싶은 일을 집요하게 반복해서 말했는지, 왜 같이 있을 때 이상할 정도로 어색했는지. 얽힌 실타래가 한 번에 풀렸다. 그녀가 원했던 것은 그가 아니라 그의 지갑과 통장이었다. 그녀에게 있어, 그는 말만 하면 재깍재깍 티켓과 예산을 준비해주는 편리한 도구였다.
그는 울부짖지 않았다. 싸우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는 잠시동안 무표정하게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 자리에서 그녀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바로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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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활성화된 플래그는 그가 생각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가 청춘의 시작이라고 인식했던 현실은, 사실 이상한 헬멧을 쓰고 빈 공간에서 자기 혼자 허우적대는, 옆에서 보면 이상하고, 기괴하고, 때론 웃기기까지 한 가상현실이었다. 그는 허탈한 쓴웃음을 짓고는 컴퓨터의 화면을 응시했다.
"DROP DATABASE"
그의 손동작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는 명령어를 입력하고, 데이터베이스가 삭제된 것을 확인하고, 수동으로 데이터베이스의 가비지 컬렉션(garbage collection)을 실행하고, 그 어떤 데이터도 복구할 수 없도록 디스크의 모든 빈 공간에 DoD 5220.22-M 방식의 데이터 완전 삭제를 수행했다. 그의 옆에는 디스크의 자성을 물리적으로 제거해서 데이터를 완전히 지우고 디스크도 아예 못쓰게 만드는 디가우저(degausser) 같은 장비도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 정확히는, 그 데이터에는 디가우저를 쓸만한 가치도 없었다. 겨우 이런 걸로 디스크를 터뜨리는 것은 디가우저에게도, 디스크에게도 실례였다.
모든 작업이 종료된 후, 그는 자리에 누웠다. 더이상 귀찮게 열 문장을 보내고 한두 단어를 받을 때까지 기다리는 밤인사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귀중한 생애 첫 교훈을 곱씹으며 잠에 들었다.
_꿈 깨라. 네 주제에 무슨 여자친구냐.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