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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 26/06/23 17:29:55 |
| Name | T.Robin |
| Subject | 리쥬브 프로토콜: 32-1. 가장 긴 겨울밤의 퍼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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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쥬브 프로토콜
## 가장 긴 겨울밤의 퍼즐
언제나 광활하기 그지없는 로비의 커다란 모니터에 새로운 공지사항이 올라왔다.
> 메이드 군단의 대외활동시 인원의 안전을 지원하기 위한 '가디언 팀(Guardian Team)'이 신설되었습니다. 이번 주 토요일 오후 2시에 지하 체육관에서 발대식 및 요인 경호와 거점 보호 시범이 있을 예정입니다.
클로에는 공지사항을 읽고는 '오오오오' 하는 소리를 냈다.
"스승님 드디어 해내셨군요!"
"응?"
"군단 내부에서 자원을 받아서 경호팀을 만들어 보겠다고 하셨거든. 졸업한 뒤에 경호팀으로 입사하는 식으로 운영한다던데? 나도 나중에 갈 데 없으면 경호팀으로 취직할까?"
"클로에는 린 님한테 인정도 많이 받았으니까 괜찮을 거야. 나중엔 안방마님 같은거 되는거 아냐?"
"스승님이 날 인정한다고? 내 앞에서는 맨날 구박만 하는데?"
"그을쎄에......"
루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애매한 듯 알쏭달쏭. 루나는 왼손 검지를 들어올려 자기 입술에 대면서 윙크했다.
"린 님한테는 비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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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동안 루나와 클로에에게 가장 중요한 일과 중 하나는 둘이서 시간을 맞춰 상점가를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루나처럼 하루의 대부분을 독서나 뜨개질같이 움직이지 않는 활동으로 보내는 사람들에게는 하루에 필요한 운동량을 채울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개학 때쯤에는 분명 몸이 두 배쯤 불어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 그 이전에, 이미 신호가 있었다. 자는 시간이 늘어났고, 몸이 온종일 무겁게 느껴졌고, 결정적으로, 뱃살이 한 움큼 잡히기 시작했다. 그녀는 클로에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클로에는 루나의 뱃살을 마쉬멜로우마냥 주욱 늘려보고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물론, 뱃살을 늘려본 것은 루나의 새빨개진 얼굴을 보고 싶어서 그런 것뿐이었지만.
그렇게 상점가를 돌아다니던 어느 날부턴가, 거리에 <동짓날 가장 깊은 밤 축제>를 알리는 안내가 생겨났다. 상점가 입구와 여기저기에 플래카드가 걸렸고, 보이는 가로등마다 안내문이 붙었다. 매일 똑같은 상점에서 똑같은 물건들만 구경하던 터라 슬슬 상점 직원들에게 눈치가 보이던 그들은 상점가 번영회 사무실을 찾아갔다. 번영회의 담당자는 공연, 음식 가판, 팝업 스토어같은 것들로 참여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고, 그 말을 들은 클로에의 눈이 빛났다.
"이거, 재미있을 거에요! 댄스든, 마술쇼든, 아니면 팝업 스토어든, 뭐든!"
클로에는 맨션에 돌아오자마자 참가 안내서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축제를 같이할 메이드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클로에의 제안에 선뜻 함께 하려 하지 않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거절이 계속되면서 클로에의 얼굴도 울상이 되어갔다.
"루우나아! 언니들이 이거 안 한대!"
누군가는 인파 앞에 나서는 것을 어려워했다. 누군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을 따라오는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굳었다. 맨션에서 생활하는 많은 메이드들에게, "현실 사회"는 그들이 겪은 과거의 두려운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흉터이자 트리거였다. 사이버 범죄가 현실로 이어졌을 때, 그들은 스토킹을 당했고, 집단에서 "공식적으로" 따돌림을 당했으며, 여자로서 치욕스러운 일을 당했다. 축제에 참여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들에게 집중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관심이나 시선의 집중은 곧 어두운 경험의 시작을 의미했다. 누군가에게 관심받지 않았다면, 내가 안 좋은 일을 경험할 리도 없을 터였다.
맨션 안에서 그들은 항상 심하다 싶을 정도로 발랄했고, 사소한 것에 웃으며 깔깔거렸지만, 그것은 그들이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거나 성격이 밝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어두운 경험을 떠올리지 않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그리고 클로에는 그 이유를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안되면 가면무도회같은 컨셉으로 얼굴을 다 가리고 해도 될 거예요! 그러면 괜찮을 거라고요!"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클로에와 함께하려 하지 않았다. 다들 곤란해하거나, 조용히 미안하다고 했고, 일부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그 자리에 그냥 주저앉고, 또 몇몇은 갑자기 그녀 앞에서 울기 시작했다. 클로에는 결국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힘없는 발걸음으로 루나의 곁으로 돌아와야 했고, 루나는 징징대는 클로에를 안고 그녀의 머리를 한참 동안 쓰다듬어 주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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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2시. 맨션 지하 체육관. 루나와 몇몇 메이드들이 무대 앞에 마련된 간이 의자에 앉았다. 관객석에는 수백 개의 간이 의자가 펼쳐져 있었지만, 그 자리를 채운 것은 겨우 수십 명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대부분은 발대식에 아무도 오지 않을까 봐 린의 수련생들이 친한 이들에게 부탁해서 와준 것이었고, 순수하게 참여한 사람들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루나는 비어 있는 좌석을 보고 친한 몇몇 메이드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다른 일정이 있어서 밖에 나가 있었다.
"에...... 오늘 가디언 팀의 발대식에 와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을 보호할 가디언 팀의 팀장, 린입니다."
예상은 했지만, 자리가 너무 많이 비어 있었다. 린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강단이 넘쳤지만, 그녀는 평소와 다르게 말끝을 살짝 흐렸다. 린은 이를 살짝 악물고, 가디언 팀의 현황과 운영, 팀원의 모집 요강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동체시력이 충분하다면 빠르게 넘어가는 슬라이드들 속에서 굉장히 많은 준비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겠지만, 관객석에 있는 사람 중 그녀의 발표 내용에 진지하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이 상황에 그런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비록 프레젠테이션의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내용을 길게 이야기해 봐야 좋을 일이 없다는 것 정도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럼, 요인 경호 시범에 들어가겠습니다. 위치로."
클로에와 한 명의 메이드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클로에가 먼저 앞으로 걸어갔고, 눈매를 날카롭게 살린 메이드가 그녀를 뒤따랐다. 이후 무대 반대편에서 린이 그들을 향해 걸어왔다. 클로에가 가까워지자, 그녀는 소매에서 단검을 꺼내 클로에의 가슴을 찌르려 했다. 순간, 클로에의 뒤에 있던 메이드가 대각선 방향으로 가로질러 들어와 클로에를 가로막으며 단검을 쥔 린의 손을 쳐냈다. '탁'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단검이 하늘로 날아갔다.
"이게!"
현실성을 배가하는 화난 목소리. 단검을 떨어뜨린 그녀의 팔이 엉뚱한 방향으로 휘청이며 몸에 큰 빈틈을 만들어냈다. 경호 역의 메이드는 그 틈을 노려 린의 안쪽으로 깊게 파고들어, 그녀의 몸을 빨아들이는 듯 상체를 옆으로 감았다가 다시 풀었다. 린의 몸이 튕겨 올랐고, 그녀의 몸이 공중에서 몇 바퀴 돌고는 '쿵' 소리를 내며 땅으로 떨어졌다. 린은 땅에 떨어진 뒤로도 몇 바퀴를 더 굴러 바닥에 엎어졌다. 메이드는 재빠르게 수갑을 꺼내 등 뒤로 채웠다.
"요인 경호 시범은 여기까지입니다."
메이드가 린의 손목에 잠겨있던 수갑을 풀어주고 손을 내밀어 그녀를 일으켰다.
"제시, 마지막에 칠성 천분주는 연습때는 없었던 거잖아...... 낙법을 해도 아프다고."
"에이 이런 때 아니면 스승님한테 언제 그런거 써먹어 봐요."
"너도 저 클로에 꼬맹이한테 물들어가냐......"
린은 도움을 받아 일어나면서 관객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조용했다. 이런 걸 하면 다른 곳에서는 의례상 박수라도 쳐줬다. 그런데, 다들 반응이 없다. 왜지. 그렇게까지 별로였나. 하지만 다음 순간, 그녀는 관객석의 얼굴이 다들 똑같이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멋있다......"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고요한 체육관을 크게 울렸다. 잠시 후,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그래. 왜 울어. 린은 당황한 얼굴로 시범을 도와준 메이드와 클로에, 그리고 무대 아래에서 대기중인 다른 메이드들과 눈을 마주쳤지만 다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 와중에 관객석에서는 우는 메이드들을 서로 옆에서 토닥이며 달래주었다. 이쯤 되면 발대식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녀가 무대 위와 아래에 있는 메이드들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내자, 다들 자신들이 초대한 친구들을 향해 재빠르게 달려갔다. 그리고 그녀 또한 관객석의 한 쪽 구석에서 혼자 울고있는 메이드를 토닥여주었다.
"괜찮아요?"
"네......"
그녀는 마스카라와 색조화장이 사방으로 얼룩진 얼굴을 들어올리고는, 자신의 손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린의 두 손을 있는 힘껏 꼭 붙잡았다.
"멋있었어요...... 저도, 저도 그렇게 강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그랬으면, 그 때, 그렇게 무너지지 않았을텐데...... 제가 린 님처럼 강했으면, 그 새끼, 그 자리에서 아주 죽여버렸을텐데......"
흔한 장면이었다. 누군가에 대한 증오. 그리고 약했던 자신에 대한 자책. 그리고 린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그녀 또한 피해자였기에, 그녀 또한 자신을 밑바닥으로 떨어뜨린 그들을 저주했기에.
"괜찮아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희들이 지켜드릴께요."
백 마디 말로 하는 위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보다는, 체온을 나누며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주는 것이 더 중요했다. 린은 자신의 품을 열고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마스카라가 옷에 묻든 말든 펑펑 울 수 있도록. 서럽고 더러웠던 과거의 기억이 눈물 속에 떠내려가도록. '강함'에 대한 동경이 다시 일어설 용기가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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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관에서의 작은 소동이 끝난 후, 맨션은 한동안 린과 가디언 팀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 채워졌다. 비록 발대식은 거점 보호 시범을 보여주지도 못한 채 중간에 어정쩡하게 끝나버렸지만, 맨션의 모든 메이드들은 날렵한 몸놀림으로 울고 있는 친구들을 위해 '날아간' 그들의 강한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와, 그들을 강하게 키워낸 '스승'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두근거렸다. 그녀는 그들과 같은 아픔을 공유했고, 강했고, 그 강함을 주변의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그 강함은 세상을 무서워하는 메이드들을 안전하게 지켜줄 방패이자 그들을 위협하는 모든 것들을 물리칠 창이 되어줄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맨션 식당. 저녁 시간.
"린 님."
"네?"
"저, 케이트라고 해요. 이거 때문에 좀 상의드릴 수 있을까 해서......"
홍차를 마시며 머릿속을 비우던 린에게 메이드가 다가와 팜플렛을 내밀었다. <동짓날 가장 깊은 밤 축제>.
"아, 저도 이거 봤습니다. 축제 보러 가시게요? 저나 가디언 팀이 같이 동행해 드리면 될까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런게 아니라...... 저, 축제에 부스를 내고 싶어서요."
"그럼 부스를 경호해드리면 되겠네요. 예.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런데 그게...... 부스가 좀 클 것 같아요."
"혼자 하시는 게 아닌가 보죠?"
"네. 축제에 참가하고 싶어하는 친구들이 좀 있어서, 그 친구들끼리 따로 모였어요. 그런데, 다들 무방비로 노출되는건 무서우니까......"
린이 가볍게 웃어보였다.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럴 때를 위해 준비된 가디언 팀이니까요. 그리고 꼭 제가 아니더라도, 가디언 팀에 있는 친구분들이 케이트 님을 지켜드릴 겁니다."
그녀도 똑같은 사이버 범죄의 피해자였다. 하지만 그녀는 당당했다. 그녀는 자신을 믿었고, 자신의 피와 땀으로 얼룩진 그 시간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리고, 그녀 밑에서 같이 수련한 팀의 수련생들도, 점점 그녀를 닮아갔다.
"사귀고 싶다......"
"네?"
"장난이에요 장난. 왜 그렇게 소스라치게 놀라신담. 그런데, 린 님이 남자였으면 저 청혼했을지도요?"
"왠지 최근에 그런 비슷한 말을 자주 듣긴 합니다만......"
린은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 자세를 바로 잡았다.
"자, 각설하고, 이왕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좀 자세한 말씀을 들려주시겠어요? 어떤걸 생각하고 계신가요?"
"좋아요! 인원은 수십 명 정도 될 것 같고요. 아이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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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라고요?"
"예."
줄리안이 모니터에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은 평소와 같이 아무런 표정이 없었지만, 눈을 계속 깜빡이는 걸로 봐서는 자신이 들은 말을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메이드 군단 중 일부가 마을 신년맞이 축제에 참여한다고 합니다. 지역 공동체와 가깝게 지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이 참에 예산을 좀 배정하고 싶습니다만, 어떠신가요?"
마가렛의 말에서 '한 번 해보겠다'와 '무조건 밀어붙이겠다'가 동시에 느껴졌다. 줄리안은 천장을 바라보며 눈쌀을 찌푸리며 턱을 긁었다.
"다 좋은데, 사전 고려사항들이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떤 프로그램으로 참가하는지는 둘째치고, 메이드들이 노출되면서 생길 수 있는 잠재적 위협 요소에 대한 대응이라던가, 참여 도중 발생할 수 있는 응급 상황, 특히 해리나 공황 상태 등에 대한 대응 프로토콜이라던가. 이런 건 검토가 된 건가요?"
"어느 정도는 되었습니다. 지원 인원에 대한 적합성 필터링도 하고 있고요. 다만, 아무래도 일이 좀 큰 데다가 처음 하는 작업이니만큼, 자문단에서 도움을 주시면 더 좋겠네요."
"알겠습니다. 자문단에는 제가 연락하면 되고...... 그래서, 어떤 프로그램으로 참가할지도 결정하셨나요?"
마가렛이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생각하시는 그겁니다."
"그건가요."
"예."
그 말을 들은 순간, 평소에도 굳어있던 줄리안의 얼굴이 비장한 각오를 내비치며 더 딱딱해졌다. 그가 책상을 박차고 일어섰다.
"좋습니다. 그럼, 이 건은 제가 직접 준비하지요. 프로그램, 승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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